와사등. 잡담

와사등(김광균)


차단―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
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

긴―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
늘어선 고층(高層) 창백한 묘석(墓石)같이 황혼에 젖어
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
사념(思念)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

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
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
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

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
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
길―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

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(信號耭)
차단―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

<와사등, 남만서고, 1939>


 어릴적에는 모더니즘이니 색채적이니 감각적이니 작가의 생이니 그런것만 보이고 별 감정이 안 들었는데.
 어른이 되고부터는...
 왜 이렇게 가슴에 절절히 울리는 걸까...?

 차디찬 사회에 한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, 모두가 동감할 시가 아닌가싶다....
 마치 우리의 가슴 속을 틀로 떠서 그대로 말린것처럼... 너무나도 공감된다.

 슬픈 건... 우리가 학생 때 이 시를 이해못했듯이 지금 학생들도, 우리의 아이들도 어른이 되기전에는 이 시를 진정한 의미로 이해하는건 불가능하다는거.
 ...
 ...아니. 이 시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 아닐까.